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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경지의 세계>-② '미스트롯, 홍자 명상으로 듣다'
 

 편집자주 = 이 글은 김왕석 전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글로, 글의  내용에 대한 편집 없이 오탈자 검수 후 원문을 그대로 올렸습니다. 본 글의 내용은 경인신문의 편집방향이나 데스크와 편집자의 의도와 관련이 없습니다.

 

▲ 김왕석 전 교수     ©경인신문

'미스트롯' 경연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의외로 큰 관심을 보였다. 우리노래, 트롯트가 마치 용암이 되어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 같아 필자도 기쁜 마음이었다. 참가자중의 한 사람인 홍자에 관해 몇자 글을 적어보겠다.

 

트롯이라 하면, 우리의 한의 정서가 잘 배어 있는 우리 노래다. 그러니 당연히 삶의 애환과 사회의 비정함, 사랑의 실연에 대한 원망 등이 실려 있기 십상이다.

 

그런데 홍자의 감성은 달랐다. 처음 홍자의 노래를 들었을 땐 홍자는 자신의 감성과 감정을 부르는 노래에 전혀 담지 않았다. 노래하는 그녀의 몸과 마음은 그냥 소리를 여과하는 울림통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노래는 마치 우리들 가슴속 깊은 곳에 상처입고 버려진 감성을 일깨워 주고, 치료해 주는 것 같았다.

 

홍자의 노래스타일은 독특했다. 그녀의 노래는 우리의 옛시조를 읊조리는 정가 같기도 했고, 자기의 속마음을 고백, 자조하는 창가 같기도 하다. 홍자의 노래가 더 빛을 발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희망과 꿈을 노래한다기 보다는 슬픔, 회한, 상처, 후회를 노래했다. 홍자의 노래는 슬픔, 상실, 후회, 상처 그리고 어두움 그 자체였다.

 

그녀의 노래는 마치 스폰지가 물기를 흡수하듯 우리 마음 속에 스며들었다. 홍자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숙연해졌다. 홍자는 자신의 감성을 너무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노래로 우리는 홍자와 하나가 되었다. 어두운 상처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홍자만이 가졌던 혼자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상처였고 그래서 우리는 홍자의 노래를 듣고 함께 흐느껴 울었다. 그런 감정과 감성으로 노래를 할 수 있는 가수가 그리 흔했던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그런 슬픔과 울림이 있다는 것을 홍자의 노래를 통해 확인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음악은 사람을 경지에 오르게 한다. 생각의 최고단계인 경지의 세계는 무념, 아무 생각이 없는 생각의 경지가 모든 번뇌를 끊는다. 홍자가 어떻게 그런 경지를 터득하고 노래를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팍팍한 삶에서 삶의 포기를 통해 경지를 체험했는지, 아니면 절망한 삶 속에서 모든 희망을 끊고 노래한 적이 많아서였는지, 그것을 알 길은 없다.

 

홍자는 그 후, 준결승과 결승까지 진출하며 노래를 더 불렀다. 그때 홍자는 자신에게 적합한 노래와 어떤 경지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를 잊었다.

 

그녀는 흥 있는 노래를 불렀고, 마음 속엔 욕심과 욕망이 가득해 보였다. 과도하게 높은 음을 잡으려 할수록, 목소리는 허공을 헤메였다. 홍자의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과거의 슬픔을 걷고 양지로, 밝은 세상으로, 젊음으로...어찌 홍자인들 비상하고 싶지 않겠는가? 누군들 슬픔 속에 갇혀 살고 싶겠는가...

 

마지막 한마디만 보태자. 홍자의 노래는 욕심과 욕망을 다 버린 무념의 경지에서 사람들의 혼을 흔들 수 있는 노래다. 홍자의 노래는 우승을 다투는 세속의 노래가 아니라, 혼을 흔드는 노래다. 오랜만에 트롯트에서 혼이 혼을 흔드는 노래를 들었다.

 

중앙대학교 김왕석 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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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3 [08:38]  최종편집: ⓒ 경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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